목양칼럼

제목 절제하면 이삭, 못하면 미디안 (2021.4.29.목)
글쓴이 관리자  (58.151.66.162)
날짜 2021-04-29
조회수 15

절제하면 이삭, 못하면 미디안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창25:1,2)’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아브라함 아들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그 뒤로도 후처를 얻어서 6명이나 더 낳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아브라함 가문은 자식 문제로 십수년간 골머리 아팠던 집안이다. 약속의 아들 이삭을 기다리다 못해, 하갈이란 첩을 얻어 서자 이스마엘을 낳았던게 온 집안의 우환거리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집안에는 아들은 오직 정실부인을 통해서 얻자는 암묵적인 룰이 생긴다. 이게 사라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잘 지켜졌다. 

그런데 사라가 127살의 나이로 죽고 후처를 맞이하면서 일이 묘하게 흘러간다. 당시 137세 이상이던 아브라함은 자기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100살 때 이미 생식 능력이 사라졌었으니까, 그보다 훨씬 더 늙은 137세 된 나이에 자식을 볼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100살에 이삭을 낳았지만 그 뒤로 40년 넘게 생식 능력이 살아있을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을법 하다. 

 

  뭐 알았든 몰랐든 아브라함은 생식 능력이 팔팔하게 살아있었고 그 덕분에 아들을 6명이나 더 낳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낳은 아들들이 약속의 아들 이삭과 영 화합이 되지가 않는다. 이게 또 다른 우환거리가 될거란걸 깨달은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기 전에 얼른 자식들을 독립시켜서 이삭을 멀리 떠나가도록 한다. 


  노년에 얻은 아들은 어떻게 봐도 귀여운 법이다. 그런 아들을 6명이나 줄줄이 떠나 보낼 때 아브라함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생식 능력을 남겨두신 하나님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아들을 낳은 자신을 탓했을까? 어느 쪽이 되었든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능력이 있다고 다 쓰면 안 되는구나’


  절제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능력이 있고 권리가 있다고 다 쓰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것이 절제다. 자동차 속도계를 보면 대부분 220킬로까지 표시가 되어 있다. 그 말은 이 자동차는 시속 220km로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달리지 않는다. 그 속도로 한 시간만 달려도 차가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정 속도인 100km 정도로 달리면 몇 시간을 달리더라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 중간중간 쉬어가면 하루 종일 달려도 괜찮다. 절제된 속도라서 그렇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주신 생식 능력은 정실부인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삭의 이름이 기쁨, 웃음이란 뜻이다. 절제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뜻이다. 

 

  반면 그두라가 낳은 자식 중에는 미디안이란 자식이 있어서 두고두고 이삭 후손의 원수가 된다. 절제하지 못해서 나온 아들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교훈이다. 

 

  오늘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선에서 머물러야 한다. 거기서 한발 더 가면 미디안이 될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절제를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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